關於水墨的革命性和李振明的創作
金相澈(韓國2018水墨雙年展策展人.韓國同德大學教授.美術評論)
眾所周知,水墨是一種獨特的創作方式,它歷經一個漫長的歷史發展過程而逐漸醞釀熟成。從地區來看,水墨也是韓國,臺灣,中國,日本等整個大東亞文化圈的特殊創作語言。中國傳統水墨畫的豐富形成經驗,獨特的美學和欣賞體系,經過如此悠久的歷史和傳統的積累,構成了東方繪畫的精髓,形成了東方繪畫傳統的基礎和本質。
唐朝被認為是崇尚水墨的起源,它是一個文化繁榮和物資豐足的時期,在豐富多彩的富裕社會氛圍中,寓含恬淡寡欲黑白墨色畫風的出現,在美術發展史上確實是具有劃時代的意義。嘗試透過非物質的精神直視非現象的本體,面對本質而不是現象,這是一種革命性的思想。值得注意的是,這不是形成方法,而是人類的覺醒,在水墨的領域裡,山水畫與文人畫等形式的變化,是隨着時代的變遷,而訴求對人類的關心,按照不同的階段,以不同的形態表現出來。這些改變是從線到面,從現實到寫意的形式和內容的變化上,也是從上層統治階層到下層普通老百姓的面向上,而這一切都是通過激進和革命性的變革過程來完成的。
但是經過從傳統時代到近現代的劇變時期,我們將不得不回顧一下,或許將水墨視為一種理解和吸收的形成手段,來重新考慮它對於那個時代的人們是否已經失去了原有的核心價值。傳統不能僅是守舊,只有在通過不斷注入新時代的新價值,從而確保新的生命力時,才能得到尊重。然而,水墨似乎一直沉浸於固有的傳統主義之中,重複着沒有生命力的沿襲形式,失去了本來強健的能量。與此同時,水墨對創新和變革的需求至今卻仍一直存在著。
現代社會處於數位化的機械文明的巔峰高潮。這是人類過去從未經歷過的新文明局面。在物理空間侷限已經透過網路解決的新文明情境中,普遍性的價值正在被特殊性,地域性和差異性所取代。多樣化和多變化性可以說是是當代藝術的特徵之一,它只不過是這種文明發展形勢造成的結果。水墨與其他繪畫有著明顯獨特性的區別,以地域性爲基礎,是具有造型審美特徵的特殊創作體系,或許水墨正面臨着眼前嶄新的可能。
與藝術家李振明的相識已經有多年之緣了,認識李振明已經三十幾年之久。我對他早年獲得雄獅美術新人獎首獎的《關渡迴徜》、《井底之蛙》作品印象依然鮮明、清晰。對他創作的第一印象不是傳統的墨守陳規,而是水墨現代化的明確方向性和不斷實驗的精神。回顧當時臺灣一般的水墨畫,主要是強調傳統的山水畫風,而他顯然是一位異質的藝術家。從那個時期,他的作品通過一種超越媒材和形式的做法,表現出一種獨特的實驗精神。
他開創了一個獨特的作品風格,他以精緻的筆觸和細膩的感性意識,表現出別出的畫面,透過特有的縝密與精巧的畫面經營,充分發揮固有的抒情性獨特造型,建構了自己的世界。讓觀賞者激發了作品觀賞的思維。這裡擁有他自己一個獨立的世界,將水墨與色彩交融的世界,也是事實與不思議交疊的世界。
他的實驗不斷延續,但那不是過度的激進或破壞性的,而是穩健而漸進的。即使西方美術思潮氾濫之際,他依然按照自己的設定和創作方向,默默地探討着水墨的可能,並試圖記錄自己所在的時代和社會。
面對台灣社會環境現代化和個性化的問題,現代水墨試圖對文人畫進行現代詮釋,並借鑒西方抽象藝術的經驗來轉型。另一方面,李振明則是以具象性爲前提,以多種符號含義的象徵和表現,透過特有的縝密描繪與精巧的畫面經營,充分發揮固有的抒情性,以其獨特的造型語彙,構築了屬於自己的美好天地。
李振明作品中對人與自然、文明與環境的關照,是他創作之初志一貫的方向。 他透過微小的事物表達了對所有生命的敬畏和尊重。如今,我們在機械文明的巔峰上享受着物質的豐饒,卻也面臨着環境破壞與人性喪失的嚴重問題。
基於西方價值觀的現代文明的實現,在經濟掛帥的觀念下,所造成的不僅僅是環境或生態問題,而是人類將來能否在地球上生存的恐懼。藝術不只是單純的唯美主義的工具,而是應該積極有所作為,在自己所處的時代勇於發言,尋求可行的替代方案。可以說藝術家李振明的創作所傳達的意義是相生與和諧,同時也合於時代性的。他創作的畫面並非單純將表現對象羅列並置,而是透過它們傳達遙遠彼岸的慰藉和安息。那不僅僅是單純宗教上的意義,而是對人類和自然進行認真的反思,進而產生對所有生命的重視敬意。
雖然說水墨是傳統文化的重要遺產,但如今其相對位階是否依然與實際相符,不得不令人懷疑。這或許是隨著傳統到現代時空的轉移,而產生社會觀點和審美要求的轉變,這可能是不可避免的。但最重要的是,我們必須在這當中找到它的本質精神之所在。
不斷對自己周遭的人們和社會表達關心,以及爲表達這些關照而做出的正向努力和積極的實踐,這正是水墨藝術的本質精神,而這些李振明創作中隱含的意涵值得我們加以關注。在數位化多元的當代藝術語境中,代表東方思維和美學觀的水墨,其獨特性和差別化的價值應該要予以提升。在面對西方自然觀產生的當代文明危害的現實中,李振明藉由他的創作來對當下的時代和社會發聲,正是值得我們關注的地方。因爲這是透過水墨底蘊精神的傳承與變革,讓水墨的命脈在這個時代中得以衍生和延續的關鍵,而這種轉型革命的衝撞實踐恐怕是必須的。
수묵의 혁명성과 이진명의 작업에 대해서
金相澈(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주지하듯이 수묵은 매우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배태되고 숙성된 독특한 조형 방식이다. 지역적으로는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동북아 문화권의 특수한 조형언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을 통해 축적된 수묵의 풍부한 조형경험과 독특한 심미관, 감상체계 등은 동양회화의 특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동양회화 전통의 근간이자 실체를 형성하고 있다.
수묵의 발생기로 꼽는 당(唐)은 문화적 번영기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던 시기이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돌연 흑과 백의 금욕적인 수묵의 등장은 미술사에 있어서 가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물질이 아닌 정신을 통해 현상이 아닌 본질을 직시하고자 했던 수묵의 사상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수묵의 변화를 추동한 것은 조형적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각성이었다는 점이다. 수묵에 있어서 산수화, 문인화 등의 형식 변화는 바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었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른 양태로 표출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선에서 면으로, 사실에서 사의로라는 형식과 내용의 변화와 더불어 상층 지배계층에서 하층의 일반 백성들이라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모두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에서 근, 현대에 이르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재료와 형식으로서의 수묵에 이해하고 조형의 수단으로써 이를 수용함으로써 본연의 정신적 가치를 망실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이란 단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부단히 수혈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확보하게 되는 유기적인 것일 때 비로소 존중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수묵은 고루한 전통주의에 함몰되어 생명력 없는 형식의 답습을 반복함으로써 본연의 건강한 자생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그간 수묵에 대한 혁신과 변화의 요구가 부단히 제기되었던 것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는 디지털로 일컬어지는 기계문명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이는 과거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 상황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물리적 공간감이 일거에 해소된 새로운 문명 상황에서는 보편성의 가치는 특수성과 지역성, 차별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다양화, 다변화는 바로 이러한 문명 발전 상황의 결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수묵이 여타 회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지역성을 바탕으로 조형적, 심미적 특징을 지닌 특수한 조형체계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어쩌면 수묵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이진명과의 인연은 여러 해가 되었다. 그가 일찍이 신인상을 수상하였을 당시의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작업에 대한 첫 인상은 전통적인 것의 묵수적 태도가 아니라 수묵의 현대화라는 분명한 방향성과 이의 실천을 위한 부단한 실험 정신이었다. 당시 대만의 일반적인 수묵화가 전통적인 것에 무게를 둔 산수화 위주였음을 상기할 때 그는 분명 이질적인 작가로 각인되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재료와 형식을 초월하는 분방한 실험 정신을 통해 표출되었다. 섬세한 필치와 특유의 감성적인 감각으로 정치하면서 보는 이의 사유를 촉발하는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내었다. 그것은 수묵과 채색이 혼융되고 사실과 사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만의 세계였다.
그의 실험은 부단히 이어졌지만, 그것은 과격하거나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온건하면서 점진적인 것이었다라고 생각한다. 서구의 미술사조들이 범람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설정과 지향에 따라 묵묵히 수묵을 경영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기록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대만이라는 특정한 사공 속에서 수묵을 여하히 현대화하고 개별화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문인화의 현대적 해석이나 서구 추상 형식을 차용한 수묵 실험 등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자 함은 현대 수묵의 일반적인 추세이다. 이에 반하여 그는 구상성을 전제로 특유의 치밀하고 정교한 화면 경영을 통해 고유한 서정성을 십분 발휘하는 독특한 조형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것은 매우 섬세한 감성을 전제로 다양한 함의를 지닌 상징과 표현으로 점철된 우의의 세계였다.
인간과 자연, 문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업 초기부터 일관된 지향이라 생각된다. 그는 작고 소소한 사물들을 통해 모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표출해 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서구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의 성취는 이제 그 엄중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 생태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인류가 앞으로도 지구에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공포에 까지 이르고 있다. 미술은 단순한 유미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에 대해 적극 발언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하여야 한다 할 때, 작가 이진명의 작업을 통해 전해지는 상생(相生)과 화의(和義)의 메시지는 일정한 시의성(時宜性)을 지니고 있다 여겨진다. 그의 화면은 대상의 나열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아득한 피안(彼岸)의 위로와 안식을 전해준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외경의식이라 읽혀진다.
비록 수묵이 전통의 적자(嫡子)라 하지만 오늘날 그 위상이 이에 부합하는가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전통에서 현대라는 시공의 이동과 이에 따른 사회적, 심미적 요구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수묵 본연의 정신을 망실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부단히 자신이 속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를 표출하기 위한 건강한 노력과 적극적인 실천이 바로 수묵의 기본적인 정신이었음을 상기 할 때 이진명의 작업은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다변화된 현대미술의 상황에서 동양적 사유와 심미관을 대변하는 수묵의 특수성과 차별성의 가치는 제고되어야 할 것이며, 서구적 자연관에서 비롯된 현대문명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는 현실에서 시대와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통해 수묵 본연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 역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수묵 정신의 계승인 동시에 변혁을 통해 수묵을 이 시대에 호흡하게 하는 치열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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